2009년 5월 20일 수요일

2009.5.20 신을 읽고 있다

 얼마전에 집사람이 "신도 버린 아이들"  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집사람말이 인도의 계층 얘기를 하면서 그 계층에도 속하지 못한 최하층의 계층이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마을의 온갖 더럽고 궂은일은 다 하고도 고작 얻을 수 있는 권리란게 구걸을 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다.

간디조차 그 계급의 사람들의 권익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은 그 힘든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베르베르의 신에 이런 구절에서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했다.

주인공인 미카엘 펭송이 인도에 갔을때의 이야기라고 되어 있다.

인도의 뱃사공은 그에게 얘기 한다.

 

당신이 사는 의미는 무엇이냐고? 그리고 축복받은 이 땅에서 자살하라고

그렇다면 최초엔 최 하급의 계급(아마도 신도 버린아이들에서 언급한 그 계층인것 같았다)로 태어나겠지만

몇 세대만 더 태어나면 결국 나처럼 브라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결국 그들은 다음생에 높은 계급으로 태어나기 위해 그 모든 수모를 견디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생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죽음 이후에 축복이 있다, 혹은 다음생에 축복이 있다는 말은 왜 많은 종교에서 통용 될 수 있을까?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다음 생을 위해 이번 생의 희생을 강요 받을 까닭이 있을까?

 

유교나 힌두교나 성리학이나 뭐나 잘은 모르지만 기존의 권력자 만을 위한 제도라 생각이 된다.

일단 몇가지 룰을 만든다. 그리곤 그에 벗어날 경우 두려움을 이용한다. 물론 두려움의 대상을 확실히 하는게 좋다.

보통 엄청나게 차별받는 계층을 하나 만들고는 너 만약에 말 안들으면 저렇게 만들어 버릴거다라고 한다면

인간인 이상 두려움을 느끼고 굴복하게 되는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 안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안의 두려움을 털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내 안의 욕심을 털어낼 수 있을까?

신이시어 도우소서.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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