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3일 월요일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김영희

참 아름다운 사람같아서 김영희 씨의 흔적을 찾고 있다.
그 과정중에 아래의 글을 찾았다. 너무 아름답다. ^^;;;;



그해 가을 귀국 전시회를 끝내고 나는 많은 짐을 싸서 독일로 날아왔다.
그리웠던 물건들이라서, 또 한국산이라면 뭐든지 이곳에서는 귀해서, 그리고 무조건 갖고 싶어서 태산 같은 짐을 끌고 왔다. 그중에 살짝 마른 토란 뿌리도 끼워 왔다.
토란 뿌리를 양지바른 곳에 묻고 싹 나기를 학수고대하다 지칠 무렵, 6월에 토란은 빼꼼히 고개를 들고 혀를 내밀었다. 반가움에 넘쳐 소리를 꽥 지르며 아이들을 집결 시켰다. 의외로 그들은 심드렁해 하며 나의 감동에 만분의 일도 박자를 맞추어 주질 않았다. '또 엄마가 자기도취에 빠져 우릴 괴롭혔다’는 식으로 고개를 흔들며 그들은 각각 자기 방으로 숨어 버렸다. 결국 품안의 자식이라더니 남은 건 그때 겨우 두 살 된 막내 사내아이뿐이었다. 그놈은 깩깩대며 내가 가리키는 토란 싹에 눈길을 주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한국 같으면 벌써 봄이 지나 토란의 싹은 물론이고 제법 어른 손바닥만한 잎이 펼쳐졌을 텐데......”
그 토란 싹의 둘레에다가 돌을 둥글게 쌓아 놓고 저녁 먹으면서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렀다. 토란 싹이 나니까 절대 밟지 말고 공놀이도 멀찌감치 가서 하라고.......
이제 막 싹이 돋아난 토란이 무럭무럭 자라 곧 내 가슴에 고향의 푸르름을 채워줄듯 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도 토란은 손가락 크기만큼도 못 자랐다. 그리고 서리가 내렸다. 나는 그 가을에 몹시 서글펐다. 그래서 그 뿌리를 뽑아 잘 다독거려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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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해에는 일찍 서둘러 3월부터 화분에 심어 창가에 놓아 해바라기를 시키며 싹 내기를 해봤다.
빼꼼하게 돋은 싹은 창밖의 봄눈발을 바라보며 애잔히 커 나갔다. 아기 입 크기만큼 연록색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변덕 많은 4월도, 5월에 갑자기 때리듯 쏟아지는 우박도 피하고, 6월이 되자 제법 쨍쨍 빛이 내리쬐었다. 이곳 사람들이 모두 덥다고 벗어 제치며 난리를 피길래 나는 이때쯤이면...... 하고 토란을 뜰에 내놓고 해바라기를 시켰다. 본격적인 초여름이라 상록수 숲도 묵직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창가의 제라늄도 찬란한 꽃을 피우길래 여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토란 잎은 밤의 추위를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 가고 있었다. 10여 년을 살았어도 매번 혼동하는 날씨. 아! 그랬다. 고향의 여름은 밤에도 푹푹 쪘다. 찌는 듯한 밤 더위에 토란은 수북수북 습기를 감고 올라오고, 두런두런 이바구를 나누고들 있질 않았던가! 낮에 조금 덥다가 밤이면 가을 날씨같이 칼칼한 서늘함. 한국 토란은 이런 날씨를 견디질 못했다.
나는 다시 그놈을 방으로 데려와 창가에 놓았다. 고맙게도 그 옆에 싹이 튀어나왔다. 열심히 촉촉하게 물을 채워 주다가 토란 신세가 내 신세 같아 갑자기 처량해졌다. 기후에 맞게 골고루 나누어진 자연조화. 나는 그 섭리를 살짝 찢어 내고 사는 여자가 아닐까 하고 다시 혀를 찼다.
*먼 독일 땅으로 이사 간 외로운 '토란...'에게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덜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복효근시인의 시 한편을 이글에 넣어 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비오는 날의 최상의 운치...라해도 과언이 아닐, 토란잎에 나뒹그는 물방울... 그리고... 아침 인사를 부지런히 주고 받는 맑은 이슬방울이 생각이 납니다.
(토란꽃은 처음 봅니다. 카라꽃을 닮은 듯한 토란꽃.... 알토란과 꽃을 상상해 보는데... 그리 서로 닮아 보이진 않지만 처음 보는지라 아주 신기합니다. 더불어 감자와 감자꽃, 고구마와 고구마꽃... 그냥... 연상해 보는데 자꾸만 배시시... 웃음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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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같이는 / 복효근


그걸 내 마음이라 부르면 안되나
토란잎이 간지럽다고 흔들어대면
궁글궁글 투명한 리듬을 빚어내는
물방울의 그 둥근 표정
토란잎이 잠자면 그 배꼽 위에
하늘 빛깔로 함께 자고선
토란잎이 물방울 털어내기도 전에
먼저 알고 흔적 없어지는 그 자취를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르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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