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17일 수요일

네가 어떤삶을 살든 나는너를 응원할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한 때 말 잘하는 친구가 부러운 적이 있었다. 그 친구처럼 말 잘 했으면 하고 생각 하곤 했는데.

공지영 이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잘 쓸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이 자꾸 든다.

글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쉬운것도 아니고 한장 한장을 읽어 나갈때마다 남아있는 페이지가 줄어든다는게 안타까운 느낌이 드는 이런 책을 만난다는것은 쉬운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공지영님에게 비판적인 평론가나 너무 쉽게 쓴다는 비판이 없는건 아니지만 쉬우면서도 같은 무게와 깊이를 줄 수 있다면 게다가 많은 사람이 읽고 깨닳음을 얻을 수 있다면 돈도 벌고 세상도 밣게 만들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첫 장의 제목은 "잘 헤어질 남자를 만나라" 이다, 미처 두장을 넘기기도 전에 가슴이 묵직해 오면서 페이지 한장의 무게가 천근만근 처럼 느껴졌다.


난 자신이 내부에서 느끼는것에 충실하려는 의지와 비록 거짓이라고 직감했지만 다른 사람이 믿는 것에 충실하려는 욕망 사이에서 격렬하게 싸웠다

나 자신도 그랬다 어릴때 난 온통 혼란의 연속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쳤고 내가 아는것과 다른것을 가르치고자 했다, 거기에선 의심이나 질문을 할 수 없었다. 한다고 해도 돌아오는건 비난 뿐.


만약 인생이 길이라면 그건 항상 오르막으로 펼쳐지는거야

 인생이 오르막인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인생에 대항해 저항하지 않는것이라고 생각된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란 책을 봐도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안정을 찾고자 노력하며 완벽해 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무한 엔트로피라 하고 완벽한 상태 즉 더이상 다툼도 투쟁도 없는 고요한 상태를 이룬것을 생물학적으로 죽음 이라 할 수 있다, 죽기싫으면 투쟁하라.


주변에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 항상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기억이 있었다, 허나 여기서 그들에게 해 주고싶은 말을 찾아 냈다.

우리는 쉽게 냉소주이가 될 수 있다, 진실이란 없으며 공정함이란 허구에 불과하고 관찰은 철저하게 편파적이며 모든 이론은 정치적 편경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절반은 옳다,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거나 올바른 길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 또는 삶의 중요한 목적을 찾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진리나 정의 혹은 목적을 발견할 수 없다거나 추구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의미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이 책에서 너무 아름다운 제목을 보고 말았다, 이건 나에게 싯구처럼 들렸으며 가슴속에 평생 간직할 구절 이었다..

"희망은 파도처럼 부서지고 새들처럼 죽어가며 여자처럼 떠난다" 이 소 제목을 읽으며 어떻게 이런 구절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난 어떻게 이런 구절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를 한참동안 생각하게 되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라는 소설의 내용을 살짝 얘기해 주는데 그렇게 감미로울 수 없다. 로맹가리 그는 나에게 한참동안의 가슴 먹먹함을 선사했던 책 "자기앞의 생"의 실제 작가다, 지금까지 "에밀 아자르" 로 알고 있었는데 "로맹가리"라는 유명한 이름을 숨기고 세상의 편견에서 벗어난 책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책을 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흔히 현실을 탈출해 시골에 집을 짖는 꿈을 꾸기도 하고 외국에 나가서 사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의 주인공은 그런 떠남이란것은 도피함이 되며 자신과의 결별이며 희망, 인생의 의미등을 찾는 행위의 절단은 아닐까? 그렇기에 해변의 젊은 여인에게 자신을 열어버린것은 아닐까? 가슴속 한가닥 희망이 그녀의 손을 잡아 버린것은 아닌가? 하지만 그의 희망은 파도처럼 부서지고 여자처럼 떠나가고 만다....


한장 한장 책장이 넘어 갈 수록 주옥같은 글들은 점점 많아진다.

당신이 당신을 재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그 잣대를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니체처럼 인간을 초월하지 않고는 남들의 시선으로 부터 자유롭긴 힘들것 같다,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하지만 의도적으로 노력 한다면 자유 그 꿈에 그리던 그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롭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인간의 힘은 참된 표상과 함께 갖게 되는 주의 깊음과 생활방식과 관련된 올바름이다.

사람들은 사건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사건에 대한 표상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죽음이 끔찍한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표상이 끔찍한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한참을 갸웃갸웃거린 문구였다, 표상은 가슴속 깊고 밝은 촛불로 사물이나 사실을 비쳐 투영된 그 모양, 그 촛불이 크고 밝을수록 사물을 더욱 또렷이 비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개인은 모두 가슴속의 촛불로 사물이나 사건을 보기 때문에 외부의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개인의 인식은 개개인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심리학자 융이 한 말을 보면 간단한 사각형의 예를 들어서 니가 지금 보는 사각형을 남들에게 설명해 봐라 그것을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받아 들이는 사람은 다르게 받아 들인다, "사는것은 오해의 연속이다." 라고 했다.


인간은 자유를 원할 때에만 자유로워진다. 다른 사람은 우리가 자신을 해치고 상처낼 때에만 우리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불행이라는 것은  우리에게서 일어난 일 때문이 아니라 그일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믿음, 선입견...즉 표상이다.

 두려웠다 너무도 두려웠다. 죽음, 슬픔, 아픔 이런것이 단순한 표상일까? 그렇게 표상으로 치부해 버리긴 우리의 아품이나 상처가 너무 큰거아닐까? 예전에 6g인가? 하는 영화가 생각난다. 주인공에게 아무리 큰 슬픈 사건이 발생해도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주인공으  "life is keep going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라며 묵묵히 인생을 살아낸다.


어려움이 닥쳤을때는 신이 당신을 최후의 승자로 만들기 위해 아주 어려운 상대와 연습게임을 하도록 한거라 생각하라. - 로마 철학자 에픽토스

 지금 나의 어려움이 무엇을까? 어려움을 끄집에 내는게 두려워 그냥 피해버리거나 묻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기분좋은 기도문도 하나 얻었다.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게 해 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주여 제가 활이라면 당겨 주소서

하지만 부러지지만은 않게 해 주소서

주여 부러지든 말든 마음대로 하옵소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마음속에 갖고 있는 기도문이 하나 있었다. 집안이 불교라 대놓고 기독교를 믿거나 교회를 갈 순 없지만 재미있고 매력적인 종교인것 같다.

과연 인간이 이 생을 살아가며 어떤것은 할 수 있고 어떤것은 할 수 없다는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일은 나에게 오는걸까? 오는일은 할 수 있는일이고 찾아 가야 하는일은 할 수 없는 일일까? 마냥 기다리기만 하기엔 인생은 짧은것을 어쩌란 말인가?


모 이외에도 생각나는 구절들이 많지만 무엇보다 공지영님의 어법이 마음에 들었다, 자식에게 얘기하는 사람이 듬뿍 담긴 편지체.

자식을 낳고 나이를 들 수록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지금도 젊고 알아야 할 게 읽어야 할게 산더미 처럼 많지만 점점 더 행복해지고 깨닫게 되는게 인생이고 내가 알게 된 모든것을 자식에게 주고싶은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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